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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의 지남철]
[미디어오늘 이진순 성공회대 겸임교수]



▲'구글 포 코리아 2023' 행사에서 관람객이 유튜브 15주년 기념 사전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내 인생의 행운 가운데 하나는, 마흔이 넘어 늦깎이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갈아엎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배우는 건,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설레고 경이로운 '탈각'의 과정이었다.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한 2003년은 새로운 변화와 낙관론이 급류처럼 휘몰아치던, 바야흐로 '디지털 로망'의 시대였다.

다중채무자 멕시코의 사바티스타 무장투쟁, 이라크전쟁 반대시위, 반WTO 연대시위 등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전지구적 시민투쟁을 실시간으로 조직해내면서, 인터넷이 시민행동과 인권회복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 흥분 어린 기대에 부풀었던 시기다. 언론의 상업화 이후 쇠퇴했던 공론장이 인터넷 시대를 맞아 비로소 부흥기를 맞을 것이라는 낙관적 진단이 학계에서 전국은행연합회 회원가입 쏟아져 나왔다.
2004년 '소셜미디어'란 용어가 학계에 처음 등장했다. 버클리대학에서 열린 블로그온 컨퍼런스에서 '소셜미디어'란 용어가 처음 쓰인 이후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학회에 소셜미디어 세션이 생겼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매장된 신세계였고,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의 진지였으며, 민주주의의 든든한 동맹군 미소금융개인대출 으로 인식되었다. 2002년 대선의 노무현 당선은 이런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비주류 정치인으로 취급받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다양한 온라인 매체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평범한 시민의 힘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거대 괴물로 성장했다. 세계 금융자본주의와 군산(軍産)카르텔, 권력과 표준원가계산 결탁한 거대 언론사에 맞서서 풀뿌리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던 20년 전의 인터넷이 아니다. 음모론과 허위정보, 혐오와 적대가 난무하고 깊은 우물처럼 동어반복의 메아리만 울려 퍼지는 부족주의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보수·극우 유튜버들. 사진 700만원 대출 =유튜브 화면 갈무리·Getty Images Bank, 그래픽=미디어오늘



시사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 유튜브를 하루 1시간 이상 시청하는 과몰입층은 비상계엄을 옹호(68%)하고 탄핵에 반대(74%)하며 서부지법 폭동이 정당한 저항권 행사(63%)라고 답한다. 보수 유튜브 미시청층의 의견(계엄옹호 6%, 탄핵반대 15%, 서부지법폭동 동의 8%)과 확연히 대비되는 수치로, 보수 유튜브가 헌정질서 파괴를 정당화하는 프로파간다 채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 관련기사 : 시사인) 여론조사로 확인됐다, 극우 유튜브에 갇힌 자들(2월24일) ]
정치는 시민의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고 숙의하는 공론장을 기초로 해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정파적 유튜브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격상하는 태도는 공론장의 파편화를 가속화할 뿐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보수 유튜버를 '대안언론'이라 치켜세웠고, 유시민 작가는 언론 엘리트의 자기만족을 위해 친명을 비판하는 '낡은 저널리즘'을 김어준의 '새로운 저널리즘'이 압도했다고 평가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언론기업의 저널리즘 독점을 깨뜨리고 시민과 소통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이 진정한 대안언론과 시민언론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초기 인터넷낙관론자들이 주창했던 규범적 미덕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디지털의 강점은 '쪽수'(조회수, 구독자수)보다 '다양성'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불온시하는 동종집단 간의 의기투합은 확증편향과 심리적 내전만 부추길 뿐이다. 둘째, 디지털의 미덕은 '속도'보다 '깊이'여야 한다. 상업화된 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심층취재와 사실 검증이 중요하다.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과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경계 없이 전파력과 동원력을 과시하는 것은 지극히 유해하고 위험하다. 셋째, 소수 인플루언서에 대한 추앙이 아니라 시민간 수평적 상호작용과 숙의적 논쟁이 동력이 되어야 한다. '소수의 발신자와 다수의 수신자'는 매스미디어 모델이다. 1인 인플루언서가 '쪽수'로 위력을 과시하는 유튜브 생태계는 매스미디어적 모델의 디지털적 변형에 불과하다.
단순다수결 투표를 온라인으로 한다고 디지털 공론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견에 대한 존중과 숙의 없이 확증편향만 부풀리는 동종교배는 공론은 아니다. 디지털 샤먼이 판치는 부족주의적 양극화에 대한 경계 없이 대안언론과 시민언론은 성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