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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완벽한 날들’은 강원도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터미널을 돌아 나오는 모퉁이에 꼭 붙어서, 그 앞을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이곳에서 보낼 시간은 ‘완벽’할 거라고 속삭이듯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영랑호 주변을 걷다 보면 그 말이 참이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신라시대 화랑 ‘영랑’이 수려한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머물렀다는 그 호수.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를 위해 속초를 찾은 늦가을, 영랑호는 천 년 전 그날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영랑호 한가운데에 미래에셋 펀드 400m 길이 부교(영랑호수윗길 부교)가 생긴 건 2021년 11월이다. 난개발과 생태계 훼손을 우려한 시민들이 반대하는데도 속초시는 부교 설치를 강행했다. 주민소송 끝에 올해 7월 법원은 부교 철거를 명령했지만 철거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영랑호 부교의 철거와 존치 여부를 두고 지역사회에서는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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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완벽한 날들’에서 열린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찾독위)에는 부교 설치 반대에 발 벗고 나섰던 독자들이 여럿 참석했다. 속초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국장을 맡았던 김안나씨는 이명익 사진기자를 알아봤다. 이 기자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투쟁을 취재한 적이 있다. 〈시사IN〉 장기 구독자인 박경심씨와 지역 정당 활동에 몸담고 있는 박 부산후순위대출 명숙씨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완벽한 날들’의 최세연 대표, 고성에서 지역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운영하는 박대우 대표, 장로교회 부목사인 장유진씨, 간호사로 일하는 ‘간헐적 독자’ 최정화씨, 지인 소개로 오늘 모임을 찾았다는 김철수씨가 서점 한편의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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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씨는 〈시사IN〉을 구독한 적은 없지만 이번 찾독위 리뷰 범위인 제890~893호의 기사들은 챙겨 봤다며 “〈시사IN〉은 민주당 기관지냐”라고 물었다. “오늘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쭉 봤는데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금투세 폐기(제890호 ‘금투세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는 민주당’ 기사 참 우리v체크카드 통신비 조)에 대한 것만 있더라.” 〈시사IN〉은 진보 성향 매체이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는 답변을 드리며 속초 찾독위를 시작했다.




11월8일 속초 ‘완벽한 날들’에서 다섯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가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 제890호 살아남은 아이“국가 폭력의 상흔을 보듬는 법”

박경심씨는 표지 제목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표지 제목이 ‘살아남은 아이’인데 표지 사진에는 노인이 등장하잖아요. 일단 시선을 확 잡아끌고, 궁금증이 생겨서 ‘빨리 기사를 읽어봐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890호 커버스토리는 박미소 사진기자가 선감학원 생존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겨우 살아남아 노인이 된 소년들’이었다. 〈시사IN〉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는 마감 날인 목요일 밤~금요일 새벽 제작 공정의 막바지 단계에서 정해진다. 미술팀장이 디자인 시안을 만들면, 편집소통팀에서 거기에 얹힐 적합한 문구 후보를 뽑고, 편집국장이 최종 결정을 하면 그 주의 표지가 완성된다.


속초 독자들은 선감학원에서 수십 년간 자행된 국가 폭력에 특히 가슴 아파했다. 속초 역시 ‘동해안 납북어부 사건’이라는 독재정권의 간첩몰이로 평범한 가정과 주민들의 삶이 조각났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 제891호 정말 무죄입니까“먹고사는 일의 따뜻함에 대하여”

김안나씨가 38쪽에서 아는 얼굴을 찾아냈다. 이오성 기자가 경기도 연천군의 폐기물 매립장 갈등을 취재한 ‘돈 되는 기피 시설은 어디로 가야 정당한가’ 기사에 실린 산업폐기물 토론회 사진에서 환경단체 패널로 참석한 지인을 발견한 것이다. 최세연 대표는 지역에서 되풀이되는 이런 사안의 복잡한 성격을 잘 파악한 기사라고 평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봐도 환경영향평가 등 여러 절차가 있고, 지자체, 중앙정부 등 관여하는 주체도 많다.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서 주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이슈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결국은 단순히 찬성·반대로 나뉘어서 갈등이 장기화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은유 작가가 연재하는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도 호평이 나왔다. 제891호에는 청소 노동자 송경덕씨를 인터뷰한 ‘투잡 노동자 경덕씨가 만세삼창 쓰는 날’ 기사가 실렸다. 장유진씨는 “〈시사IN〉에 나오는 다른 기사들은 치열하게 배우고 이해하려 하다 보니 읽다가 막 화가 나는데 은유 작가님의 연재는 정말 따뜻하고 감동적인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완벽한 날들’의 최세연 대표(맨 왼쪽)는 제892호 커버스토리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 제892호 동성 부부 11쌍의 결혼이야기“너무나도 닮았다”

최세연 대표는 제892호를 기다리며 커버스토리 기사가 뭐가 될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 무렵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시사IN〉 편집국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뉴스였다. 마감 날인 목요일 밤이라 편집국이 분주하던 10월10일 저녁 8시, 연합뉴스 속보를 본 편집소통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이 경사가 알려졌다. 그 시각 지면 계획을 크게 틀 수 없어 제892호에서는 ‘사람IN’ 지면을 통해 짤막하게 이 소식을 전했다. 대신 제893호에서 특집 기사(현대 산문의 혁신가, 한강의 시대가 왔다)를 편성했다.


이 호의 커버스토리는 나경희 기자와 신선영 사진기자가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한 커플 11쌍을 빠짐없이 인터뷰하고 기사로 남긴 ‘어쩌면 기사가 되기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였다. 박명숙씨는 이 기사를 “구체적으로” 읽고 왔다며 기다렸다는 듯 리뷰를 풀어냈다.


“기사를 보면서 처음에 딱 드는 생각이 (부부끼리) ‘너무나도 닮았다’, 그리고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다. 부모님조차도 ‘너희들이 행복하면 된다’ 하는 것에, 저도 나름대로 ‘나 진보야’ 이러고 다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놀랐다. 굉장히 마음이 찡했는데 ‘결혼에 미친 동성애자를 축하하는 법’이라는 기사가 그 기획에 있지 않나, 오죽했으면 결혼에 미치겠나. 인간답게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 제893호 김건희의 나라“저 너무 피로해요”

김건희 여사의 사진으로 표지를 만든 통권호는 화제를 모았다. 국회 서점에서 완판이 되는가 하면, 국정감사 자리에서 야당 의원이 제893호를 직접 꺼내 보이기도 했다. “사실은 저 너무 피로해요.” 893호를 집어들며 박경심씨가 말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호를 딱 받았을 때 ‘(김건희 여사가) 또 이렇게 나왔네’ 했다. 근데 펼쳐보니까 기사가 이따만큼 있더라(일동 웃음). 관련된 이슈들을 이미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꼭 다 아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이번 호는.” 박명숙씨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피로도가 너무 쌓여서 읽기가 진짜 싫더라.” 김안나씨는 제894호에 실렸던 경주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기사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제목이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재밌는 기사를 못 읽네’였지 않나(웃음). 그래도 양평 고속도로처럼 잊고 있었던 이슈들을 다시 짚어준 것은 좋았다.”


※여섯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12월6일 경기도 안성 ‘다즐링 북스(@darjeeling_books 0502-1932-8732)’에서 열립니다. 2025년 1월에는 경북 포항 ‘달팽이책방(@bookshopsnail 070-7532-3316)’, 2월에는 강원 춘천 ‘책방 바라타리아 (@barataria.bookstore 0507-1325-3180)’, 3월에는 전남 여수 ‘거기책방다섯 (@bookshopfive 010-8212-5745)’, 4월에는 대구 ‘나른한책방(@nareunhanbooks 0507-1356-5186)’에서 모임이 열립니다.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개별 서점에 문의 바랍니다. 〈시사IN〉 독자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다른 동네서점의 신청도 환영합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속초·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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