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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한 이재명 정부가 중복상장에 제동을 걸자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들은 기업공개(IPO) 숨 고르기에 나서거나 주주 설득 논리를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에너지는 최근 상장 주관사의 기업 실사 등 IPO 관련 작업을 중단했다. 올해 IPO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책 변화를 지켜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에너지는 한화그룹 지주사격인 ㈜한화 지분 22.15%를 갖고 있다. 이미 한화 계열사들이 상장한독립선언
상태에서, 김동관 한화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3형제가 소유한 한화에너지를 상장했다가 중복상장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화그룹은 올 상반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하는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LS 주식
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핵심 산업을 떼어내 상장해버리면 모회사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어서다.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심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하는 등 새 정부에서 규제 기조가 강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물적 분할이라느니, 인수합병이니 이런 것을 해서 내가 가진 주식이 분명히 알맹이 통통한 우량주수수료싼증권회사
였는데 갑자기 껍데기가 된다”라며 쪼개기 상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 계획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다만 상장 철회는 모회사의 재무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의 상장 절차를 중단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 30%를 8593억원에 사들인 뒤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하기테마분석
로 했다. HD현대 역시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상장 계획을 철회하고 완전 자회사로 재편입하기 위해 FI가 보유한 주식을 5441억원에 취득하기로 했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열린 '2025 SK이노베이션 기업수수료
가치 제고 전략 설명회'에서 SK온의 성장 스토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자본조달이 급한 기업들은 투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의 드라이브가 워낙 강하다 보니 기업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며 “투자가 시급한 기업들도 정부 초반에 IPO를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물적 분할이 아닌 모든 자회사 상장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LS그룹은 미국 권선(절연 구리선) 계열사 에식스솔루션즈의 IPO에 시동을 걸면서 주주설득에 나섰다. LS는 다음 달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예정이고, 내년 초 상장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LS는 에식스솔루션즈의 경우 물적 분할이 아닌, 미국 회사를 인수한 뒤 국내에 재상장시키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회사의 핵심 사업을 쪼개기 상장하는 사례가 아니기에, ㈜LS 주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논리다. ㈜LS는 지난 12일 1712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하며 적극적인 주주 환원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물적 분할의 부작용은 막아야 하지만,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가 아예 막히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 정부가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면서 IPO 시장을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건 엇박자 정책”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상장 선택권은 기업에 주는 것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